In Stead of Me Emily Ludwig Shaffer
페레스프로젝트는 에밀리 루드비히 샤퍼(Emily Ludwig Shaffer, 1988년생, 미국)의 개인전, 《In Stead of Me》를 베를린 공간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누군가를 대신해 준다는 것은 그들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 주는 것이다. 이는 부재와 집약성, 두 개념 모두와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In Stead of Me”라는 전시 제목은 이러한 이중성과 모순을 언급하는 샤퍼의 작품들을 대표한다. ‘Flowers to Share’(2022) 속 덩그러니 놓인 의자, ‘City of Lady’(2022)의 엄마 배 속의 아기, 그리고 ‘Nurse Log’(2022) 속 드리운 그림자 형상 등, 그녀는 다양한 모티프를 활용하여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넌지시 암시되는 인물들을 표현한다. 작품의 제목 또한 회화들이 어떻게 작가의 상태를 대신하여 전달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샤퍼는 본인이 엄마가 된 이후 처음으로 개최하는 이 전시가 직관적이고도 유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얽매이지 않은 공간과 묘사로 구성된 일련의 작품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변화를 마주해 온 지난 한 해 동안의 영감이자 근원이다.
작품들은 도시를 소재로 한 것과 작가가 계속해서 탐구해 온 정원에 관한 소재,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렇게 범주는 나누었지만, 각각의 작품이 어떤 쪽에 속하는지 명확히 구분 짓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에 샤퍼는 실내에서부터 숲으로까지 퍼져 나가는 공간의 묘사와 더불어, 도시의 풍경 속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듯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 등을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 그녀의 작품에 대한 범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다. 이처럼 대조적인 요소들로 펼쳐진 화면이기에 그 이면에는 마찰들이 기저하고 있지만, 작가는 창문 혹은 문의 형태를 배치해 이를 위한 탈출구를 제공한다.
화면 속 등장하는 창문과 계단, 그리고 문들은 관객이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도록 이끌거나 눈이 쉴 수 있도록 인도하는 통로로서, 작품을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이러한 형식은 샤퍼가 갤러리 공간의 특징인 사회주의적 건축을 자신의 예술 세계에 끌어들임으로써 장소에 걸맞은, 마치 이전부터 자리해 온 듯한 인상을 주며 공간을 강화시킨다. 이렇듯 자연스레 공간에 녹아든 그녀의 작품들은 갤러리 내부의 흰 배경과 더불어 관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전시 벽면은 작품이 갖는 색상환으로 번져나가고, 특정한 모티프는 인간 척도에 맞춰 렌더링 됨으로써 은유적인 공간은 점차 현실로 옮겨지고 관객은 그 세계에 개입하도록 초대된다.
이번 전시의 세 작품, ‘Sashay This Way’(2022), ‘City of Lady’(2022), 그리고 ‘Deep Foundations and High Walls’(2022)은 크리스틴 드 피잔(Christine de Pizan)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인 『The Book of the City of Ladies』(1405)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다. 초기 페미니스트였던 피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성들에 대해 반대되는 역사들을 새롭게 엮어 내어 그녀의 “도시”에 집을 짓는다. 이러한 도시 계획은 단어가 아닌 물감으로 건설하는 샤퍼 특유의 기술적 특성을 공유한다. ‘여성의 도시’에 등장하는 역사 속 여성들은 저자의 주장뿐만 아니라 도시의 건물들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샤퍼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석상들은 그들을 지탱하거나 장식할 공간들에 있음과 동시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Nurse Log’(2022)에서 두 개의 여인 석상은 받침대 위에 앉아 얼어붙은 채 움푹 들어간, 인간의 모습을 한 그림자 형태를 향해 숭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형태는 죽은 나무들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비옥한 대지로 변하는 공생의 과정을 암시한다. 샤퍼는 이 작품에서 조각상과 기념비가 우리들이 역사를 접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주변의 구축된 환경이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 나가는지를 탐구한다. 크리스틴 드 파잔을 비롯해 그녀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여성 예술가들과 작가들처럼, 그녀는 여성화된 공간을 창조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In Stead of Me》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그 맥락을 유지하는 듯한 시각적 어휘들을 조립하는데, 이는 여성들이 새로운 삶과 아이디어를 위한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에밀리 루드비히 샤퍼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2018년 샤퍼는 첫 개인전 《Stone Tapestry》를 파리의 갤러리 팩트(PACT)에서 개최했다. 그 이후, 미국 렉싱턴의 인스티튜트 193(Institute 193)에서의 《From The Ha-Ha Wall Comes The No-No Dance》, 갤러리 팩트에서의 《Wall-To-Wall》, 그리스 미코노스 섬의 디오호리아(Dio Horia)에서의 《An Island Refrain》 등 개인전을 개최해 왔다. 이외에도, 샤퍼는 런던의 테이모어 그란 프로젝트(Taymour Grahne Projects)에서의 《Contemporary Domesticity》, 뉴욕 제프리 디치 갤러리(Jeffrey Deitch Gallery)에서 오스틴 리가 기획한 《Good Pictures》, 베를린의 퓨처 갤러리(Future Gallery)에서의 《Imagining Reality》, 로스앤젤레스의 매튜 브라운 갤러리(Matthew Brown)에서의 《Nostos》, 캐나다 몬트리올의 랑코뉴(L’Inconnue)에서의 《No Place》, 뉴욕 유대인 박물관(The Jewish Museum)에서의 《In Response: The Arcades》, 아일랜드 더블린의 엘리스 킹(Ellis King)에서의 《Skins》, 페레스프로젝트 베를린 공간에서의 《what fruits it bears》 등 다수의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2021년, 그녀는 뉴욕의 랑코뉴(L’Inconnue)에서 프랑수아즈 그로센(Françoise Grossen)과 2인전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