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My Lips Group Show
근육질의 신체: 익명의 작가들, 브루스 오브 LA(Bruce of LA), 밥 마이저(Bob Mizer), 야토 타모츠(Tamostu Yato)
페티시화된 신체: 아라키 노부요시(Nobuyoshi Araki), 야토 타모츠, 톰 오브 핀란드(Tom of Finland)
쇠퇴하는 신체: 마티아스 헤르만(Matthias Herrmann), 존 클레크너(John Kleckner), 테렌스 코(Terence Koh)
민족적 신체: 콜트 스튜디오(Colt Studios), 야토 타모츠
비판적 신체: 댄 콜렌(Dan Colen), 에이미 디키(Amie Dicke), 도로시 이안노네(Dorothy Iannone), 브루스 라브루스(Bruce LaBruce), 키어스틴 롭스토프(Kirstine Roepstorff),
분노한 신체: 캐서린 가르시아(Kathryn Garcia), 댄 콜렌/조 브래들리(Dan Colen/Joe Bradley)
감상적 신체: 아라키 노부요시, 댄 아토(Dan Attoe), 도로시 이안노네, 폴 리(Paul Lee)
페레스프로젝트는 단체전 ≪내 말을 믿어줘(Read My Lips)≫를 개최한다. 이 전시에는 아라키 노부요시, 댄 아토, 댄 콜렌, 콜트 스튜디오, 조 브래들리, 브루스 라브루스, 에이미 디키, 캐서린 가르시아, 마티아스 헤르만, 도로시 이안노네, 존 클레크너, 테렌스 코, 폴 리, 키어스틴 롭스토프, 톰 오브 핀란드, 야토 타모츠가 참여한다.
≪내 말을 믿어줘≫라는 표현은 1988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수락하며 처음 등장해 각인된 용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용어는 미국 에이즈 운동 단체인 그랑퓨리(Gran Fury, 익명의 예술가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임시 아트 콜렉티브)가 사용했으며, 이들은 에이즈 위기를 종식시키고자 예술의 힘을 이용했다. 그들은 뉴욕 경찰이 사용하는 자동차 모델인 플리머스 그랑퓨리에서 이름을 따서 단체명을 지었다.
이 전시는 1980년대 후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랑퓨리의 포스터인 ‘내 말을 믿어줘(Read My Lips)’에서 착안된 것으로, 신체와 관련된 이미지의 사용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텍스트 정보(혹은 둘 다)도 사회적, 성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1950년대 악명 높은 전설적인 AMG 사진가 겸 출판인 밥 마이저는 거의 5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 ‘더 컴파운드(The Compound)’를 운영했다. 본래 급성장하는 영화 산업을 위한 남성 중심의 모델 에이전시(모델 에이전시와 다르지 않음)로 시작한 이 회사는 40~50년대 엄격한 도덕성 단속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51년 당시 보디빌더 및 헬스 잡지에서 광고를 거부당한 후, 자체 출판한 잡지 『피지크 픽토리얼(Physique Pictorial)』에서 선별한 사진을 우편 주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1인 기업을 만들었다. 전시장에 그가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보낸 실제 사진의 예시가 전시되어 있다. 게이와 이성애자를 막론하고 조 달레산드로(Joe Dallesandro), 에드 퓨리(Ed Fury), 글렌 코베트(Glenn Corbett), 그리고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와 같은 많은 배우와 근육질 남성이 마이저를 위해 포즈를 취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술 평론가 마이클 덩컨(Michael Duncan)은 “마이저는 자기 모델들을 존경할 만한 젊은 신으로 표현했다. 자수성가한 고전주의자인 그는 고대 그리스인이 이해했을 욕망의 이상화된 면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서부에서 활동하기 전에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교사로 일하던, 브루스 오브 LA로 알려진 브루스 벨라스 또한 이 그룹의 신체 사진가 중 하나였다. 밥 마이저와 마찬가지로 그는 에드 퓨리, 조 달레산드로와 같은 많은 유명 인사를 촬영했다. 하지만 브루스 오브 LA는 할리우드의 ‘거리 모델’을 섭외하기보다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전문 보디빌더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야토 타모츠는 70년대에 활동했으며,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남성 누드를 촬영한 최초의 일본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생전에 『젊은 사무라이: 일본의 젊은 보디빌더(Young Samurai: Young Bodybuilders of Japan)』, 『나체의 축제(Naked Festival)』, 『오토코: 일본 남성 사진 연구(Otoko: Photo studies of Japanese Male)』와 같이 세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미시마 유키오(Yukio Mishima)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사진작가 중 하나인 야토의 저서 『나체의 축제』에 서문을 썼다. 야토는 다작한 작가였지만 남은 사진은 거의 없는데, 그가 죽기 전, 본인의 사망 직후 몇몇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청소'하고 가족들이 아파트를 보기 전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을 모두 가져가거나 폐기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 출판된 작품 외에 남은 것은 주로 일본에 거주 중인 작가의 친구들과 전 애인의 개인 소장품인 몇 장의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뿐이다.
일본 사진의 거장 아라키 노부요시는 6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예술의 중요하고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죽음이라고 말한다. 이 두 주제는 그의 작품에 영원히 얽혀 있고, 여성 누드 탐구의 궁극적인 표현에 반영되어 있다. 그는 누드 촬영의 거장으로 유명해졌으며, 주부, 유명인, 대학생, 배우 지망생, 무용수, 모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아라키는 “결국에는 ‘일본 춘화(shunga, 노골적으로 성적 묘사를 그린 일본 전통 목판화)’에 도달하게 된다”라며, “피카소가 나이가 들어 성애물(erotica)을 그린 이유를 알 것 같다. 신체 능력이 쇠퇴할수록 예술가의 정신은 더욱 흥분된다. 사람들은 춘화가 신체성을 묘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러한 환상의 표현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또 다른 잘 알려진 주제인 꽃에 관한 모든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석산(아마릴리스 송이들) – 추분의 꽃, 죽은 자와 묘지의 꽃…’ 아라키의 사진 작품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꽃이 바로 이 석산이었다고 한다. 아라키는 도쿄 시내 미노와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그에게 놀이터는 요시와라 게이 구역과 요사와라 유녀들의 주검이 안치된 조칸지 사원이었다. 사원 묘지 곳곳에 군락을 이룬 석산이 가득했다.
꽃은 사실 새 생명이 잉태되고 미래가 시작되는 생식 기관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꽃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꽃이 행복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라키의 꽃은 삶의 절정에서도 시들어 버린다. 그의 꽃은 에로스에 잠재된 타나토스(죽음, Thanatos)의 꽃으로 완전히 불임 상태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아라키의 꽃은 우리 시대를 적절하게 상징한다.
콜트 스튜디오의 작품에서 우리는 크리스 디커슨(Chris Dickerson)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디커슨은 30년에 걸쳐 약 50개 대회에 참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수십 년간 그는 극적인 포즈 스타일로 주목받고, 탄탄하고 대칭적인 체격을 만들었다. 그의 오랜 경력에서 두 가지 업적이 특히 돋보인다. 1970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AUU가 주최한 미스터 아메리카(AAU Mr. America)가 되었고, 1982년 43세 나이로 국제 보디빌딩 피트니스 연맹의 미스터 올림피아(IFBB Mr. Olympia)에서 우승하며, 현재까지 가장 권위 있는 타이틀의 최고령 우승자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