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bogã Vesuvius Rafa Silvares
페레스프로젝트는 라파 실바레스(Rafa Silvares, 1984년생, 브라질)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세 번째 개인전이자, 밀라노 공간에서의 첫 개인전 《Tobogã Vesuvius》를 개최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은 한 인터뷰에서 The Great Curve (1980)라는 곡의 가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는 이렇게 답했다. “이런, 당신은 그게 매우 현실적이고 수수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저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를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몸짓이 외부로, 마치 연못에 이는 물결의 파동처럼 울려 퍼질 수 있다는 건 의미의 영역을 야기합니다. 신체의 자세는 세계관을 구현해 낼 수 있으니까요. (웃음)”
토킹 헤즈(Talking Heads, 가수)의 멤버인 그가 했던 이 발언에서부터 전시 공간 속 실바레스의 작품들은 공명하기 시작하고, 관객은 작가의 작품에서 명확한 의미를 찾아내기를 시도할수록 더 깊은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7점의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 명확한 의미를 찾아내고 혹은 감각을 일깨우고자 함은 무의미해지고, 동시에 관객의 시선은 질감, 역동적인 표면, 그리고 다양한 공감각을 느끼게 하는 색채의 향연 앞에 매료되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한, 그가 붙인 작품의 제목들은 불손하고 반어적이며, 상징적인 면들을 겹겹이 쌓아 올림으로써 작품의 해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화면 속 질량과 형태 사이를 정확히 나누는 경계는 형상이 갖는 단일 의미로부터 더 자유롭게 만들곤 한다. 작품이 보여주는 사물의 반사는 때론 이웃한 요소들에 의해 전염되고, 다른 한편으론 요소들은 서로 무관해보기도 하며,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듯 하지만 합쳐지지 않는 콜라주의 특성을 강화한다.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적 환상 속에서 관객은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유영하는 일상의 물건, 건축적 요소를 비롯한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유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물건 및 건축적 요소들이 탈기능화되고 본래 그들이 가진 맥락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상징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비로소 보다 근본적인 정물화로 거듭나게 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물화 중 하나는 1596년 카라바조가 그린 과일 바구니로, 이 작품은 바구니 안의 잎과 열매들이 모두 시들고 썩은 흔적이 보인다는 점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당신은 언젠가 분명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로 기능한다. 하지만 21세기에 등장한 부패하지 않는 샌드위치, 보툴리누스 독소, 그리고 피부 관리와 같이 영원히 완벽한 모습으로 남고자 하는 것들에 직면하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크게 상기시키는 형태의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독극물과 치료제의 차이점이 단지 용량일 뿐임을 감안한다면, 박테리아가 분비되어 통조림 식품에서 증식할 수 있는 보툴리누스 독소는 목 넘김을 어렵게 만들고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일종의 근력 저하를 유발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면, 보톡스는 적은 용량으로 주름과 다른 노화의 징후를 완화시켜 얼굴 피부를 진정시킨다. 이처럼 발자국, 지문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듯 실바레스의 정물화에서도 녹슨 흔적이나 손상된 부분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그것들은 시간 속에 떠돌며 중력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인물이 부재하는 그의 작품에는 여러 뜻이 함축된 은유의 유동체를 움직이는, 격렬하면서도 흘러내리는 듯한 자동화된 물체의 욕망과 책략에 의해 통제되는 작품들의 자수성가 신화를 환기시키는 최소한의 암시가 남겨져 있다.
‘그녀는 원격 제어로 움직이고 있다. (중략) 그녀를 조종하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The Great Curve 속 가사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욕망의 흐름을 상기하고, 심지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했을 때조차도 그 욕망의 흐름은 우리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린다.
전시에서 계속 마주하게 되는 돌연변이 유체는 이상적인 온도와 압력 조건 속에서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초월에 대한 막연한 약속과 합쳐진, 성적 분위기와 솜사탕, 의학적으로 완화된 불안을 환영하는 노골적인 관능성을 보여준다. 화면 속은 바람이 불지도, 수평선이 보이지도 않으며, 색의 변화가 거의 없는 하늘이 보인다. 환상주의적 관점도 없으며, 그 대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로베르트 비네, 1920)이라는 영화의 대각선이 강조된 배경과 거의 유사한, 얇고 납작한 공간이 있다. 그러나 실바레스의 작품 속 직선 형태는 곡선과 균형을 이루며 작품에서 시선을 돌리기 힘든, 일종의 핀볼 슬라이드를 만들기 때문에 영화와의 유사성은 그 정도에서 끝난다.
실바레스의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인 ‘The Great Curve’ (2022)는 세 폭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구성 요소들의 결합은 동질적으로 두 개의 사다리꼴과 두 개의 푸른 삼각형에 형태를 부여한다. 위쪽의 사다리꼴에서는 두꺼운, 액체와 같은 불꽃을 볼 수 있으며 아래쪽 사다리꼴에서는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은 채로 캔버스 너머로 사라지는 지점만이 보인다. 에스컬레이터에 의해 촉진되는 수동적 상승에서 영적이고 희생적인 암시뿐 아니라 무대 설정(연극적인 안개)과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녹 방지 처리를 한 작품 표면은 프로젝(*항우울제)을 복용한 듯한 무아지경의 상태를 촉발하는데, 이는 실존주의적이고 유머러스한 방출을 활성화시키는 장난스러운 결말에 대한 초대장으로서 황홀한 신기루를 선사한다. 결국, 우리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Cleavage’ (2022)에서, 초콜릿 바를 감싼 알루미늄 호일은 작품의 제목처럼 갈라져 있으며, 동시에 그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상단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초콜릿의 광택은 단단한 초콜릿 바의 테두리가 될 뿐만 아니라, 극장 무대 위 커튼처럼 앞부분에 나와있다. 소비와(살을 빼기 위한) 희생, 관능과 비평이 시각적인 기쁨과 서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이 시점에서, 라파 실바레스는 수십 년간 표면 반사 및 로스앤젤레스 교외에서 한 가구당 하나의 수영장을, 실제 개수를 초과할 정도로 그리는 데 시간을 보냈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조우한다.
‘Fuming and Sizzling’ (2022) 속 유체는 척박하고, 사막 같으며, 질식할 것만 같은 풍경과 함께 모래가 담긴 병을 환기시키는데, 마치 작은 재난을 목격하는 듯하다. 비극적인 결말의 주제(때때로 웃긴 주제)를 갖는 이러한 구성은 영국 건축가 그룹 아치그램(Archigram;건축+텔레그램)을 참고한 것이다. 런던의 관습과 사고의 혁신에 앞장섰던, 1960년대에 설립된 젊은 건축가 그룹은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의 토론으로 그에 기여했다. 팝 레퍼토리와 포토몽타주로 가득 찬 우편으로 보내진 그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도구로 인한 세계의 식민지화와 현대 건축의 위기를 수반한, 갑작스러운 전후 사기 진작에서 파생된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발산했다.
아치그램의 가장 상징적인 프로젝트 둥 하나는 ‘Walking City’ (1964)로, 해양과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는, 도시의 모든 기능을 포함한 움직이는 건축 단지이다. ‘Walking City’와 당시 그 밖의 다른 유토피아적 디자인들은 그 도시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서, 국제 잡지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소문이 퍼졌다. 1972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는 그가 살던 시대의 유토피아를 위한 오마주와 장례식을 둘 다 창조해냈다. 'The Planet as Festival' (Perspective)에서 ‘Walking City’는 고층 빌딩의 끝자락 옆에 폐허가 되어 있다.
‘Walking City’와 관련하여, 전시된 작품 중 가장 건축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Maldives Swirl’ (2022)에서 실바레스는 오늘날의 불안과 현실성을 품고 있는 세계 최초의 인공 부유 도시의 윤곽과 고집스러운 색채를 표현한다. 이러한 섬들은 지구의 종말이 가장 잘 보이는 최고의 전망을 포함하여, 해수면 상승이 이어짐에 따라 기후 비극의 파도에 편승하도록 건설될 것이다. 라파 실바레스는 2100년 이후 인간이 거주가 불가능해지는 국가인 몰디브 해안에서의 프로젝트에 대한 빈약한 낙관론에 더욱 적합하도록 작품의 배경에, 마치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는 난파처럼 액체 덩어리들을 추가한다.
- 디에고 마우로 리베로 Diego Mauro Ribeiro
이번 전시는 실바레스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실바레스는 상파울루의 AM갤러리(AM Gallery)의 《Mystic Sauna》와 재클린 마틴스 갤러리(Jaqueline Martins Gallery)에서의 《Exercise》, 상파울루 현대미술관에서의 《Cover》, 피보(Pivô)의 《Pivô Art Research》, 뉴욕의 페이퍼박스(Paper Box)의 《Dizzy World》,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베오프로젝트(Beo_Project)의 《So Confused LOL》 등 다수의 국제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상파울루 FAAP대학교(Fundação Armando Alvares Penteado)에서 순수미술, 그리고 상파울루대학교(FFLCH)에서 언어 및 문학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