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the In-Between Cece Philips
페레스프로젝트는 씨씨 필립스(1996년 영국 런던)의 개인전 ≪그 사이를 걷다(Walking the In-Between)≫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그녀의 아시아 첫 전시이자 갤러리와 함께한 두 번째 개인전이다.
씨씨 필립스가 페레스프로젝트에서 전시를 한 이후로 다섯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혹은 그저 하룻밤이 지난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베를린의 어스름 속에 두고 온 인물들은 이제 서울의 새벽빛 아래 다시 태어난다. ≪그 사이를 걷다≫에서 필립스는 경계의 공간, 시간, 상황의 탐구를 지속한다. 그녀는 어슴푸레한 색에 물든 데다, 런던, 피렌체, 캘리포니아를 연상시키는 정장을 입은 여성들이 사는 대도시로의 기나긴 산책으로 우리를 이끈다. 낮과 밤의 사이를 프랑스 속담에서는 ‘개와 늑대의 사이’라고 표현하는데, 시간이 지닌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각 작품에 머무른다. 우리는 주변인이라는 위치에 선 채 열려 있는 창문이나 반대편 길가들을 통해, 덤불 혹은 소파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장면들을 관찰한다. 이렇듯 씨씨 필립스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관찰자의 입장에 위치시킨다. 일반적으로 갤러리에서 무엇을 본다는 행위는 환영과 기대를 받지만, 작가이자 연구자인 롤라케 오사비아(Rolake Osabia)가 전시에 관해 작성한 “노란 불빛을 따라가세요.”라는 제목의 글처럼, 이 전시에서 우리의 시선은 “은밀한” 것이 된다. ≪그 사이를 걷다≫를 구성하는 아홉 점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오사비아의 글은 익명의 관찰자가 경험한 산책에 대해 서술하며 필립스의 작품들을 해설하는데,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뿐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필립스는 이번 신작에서 도시를 걷는 산책자(flâneur)인 인물을 계속 붙든 채로 시선의 정치학을 파고든다. 여기서 산책은 여성, 특히 유색 인종 여성이 어떻게 공공 공간을 점유하고 경험했는가를 질문하는 장치가 된다. 근대성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책자는 주로 남성으로, 그들은 예리하지만 무심한 현대 도시 생활의 관찰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현대 생활의 화가(The Painter of Modern Life)』(1863)에서 산책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집에서 멀어졌으나 어디든 집이라고 느끼고, 세상을 보고,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 이는 독립적이고, 강렬하고, 공명정대한 영혼들이 느끼는 사소한 즐거움이다. […] 관찰자는 어디를 가든 간에 신분을 숨기고 몰래 평민들 사이를 거니는 왕자나 다름없다.”
필립스는 자신의 작업으로 관찰자의 그러한 태도가 은연중에 갖는 특권을 강조한다. 어디든 속하는 데다, 위험이나 의심 없이 도시를 방황하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이다. 필립스는 작가인 동시에 여성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이 관찰된 만큼 타인을 관찰하고 있으며, ≪그 사이를 걷다≫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무엇이 보여질 것인가? 무엇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이끌어낼 것인가? 무엇이 소속될 것인가?”라는 질문들이 전시를 관통한다.
전시된 작품들 속 여성은 특히 해질녘 무렵의 도로와 바, 클럽과 같이 그동안 전형적으로 여성과는 반대된다고 여겨져 왔던 공간들을 점유한다. 자줏빛 정장과 실크 모자 차림의, 귀족적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필립스의 작품 속 인물들은 <녹색 집(The Green House)>(2023)에서 건물 옆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처럼, 비밀 결사대에 소속되어 있거나 영원한 자매애를 나눈 것처럼 보인다. 몇몇 인물은 시선을 마주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지 않은 채 곧바로 관람객과 마주한다. 인물들은 <나는 낯선 이를 관찰한다(I Spy A Stranger)> (2023)와 <밤의 블루스(Blues in the Night)> (2023)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그들과 차단되어 있으며, 이는 관찰자와 관찰 당하는 사람 간의 힘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킨다. 필립스의 작품들은 인물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거부하지만, 타인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상기시키듯 <반영(Reflections)>(2023)의 거울이나 <한여름의 음악(Midsummer Music)>(2023)의 창문은 관찰하고 있던 그들 자신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땅거미가 지는 시간은 우리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익숙함을 낯섦으로 변화시킨다. 이는 실내에 불이 켜지고 창문이 마치 진열장처럼 건물 안의 풍경을 드러내며 행인들에게 친근함을 내비치는 순간에도 그러하다. 필립스의 작품에서 이것들은 어스름한 푸른 색조와 대비되는 밝은 노란 계열의 색채로 묘사된다. 오사비아의 이야기 속 관찰자가 끊임없이 쫓는 대상인 이 노란 불빛은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사교 공간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선율을 전달한다. 약간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들은 흐릿하고 접근 불가능하기에, 우리들은 그곳에 속하지 못한 채 그 밤의 문턱에 남겨진다.
글: 클레어 클레어 뒤크레송-보에
이 전시는 씨씨 필립스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자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이다. 2021년 그녀는 화가로서의 데뷔 개인전을 런던 홈(Home)에서 그녀의 데뷔 개인전을 가졌다. 그 이후, 그녀는 페레스프로젝트 베를린(2022), 가나 아크라의 ADA 현대미술 갤러리(ADA Contemporary Art Gallery, 2022), 포스트 갤러리 취리히(Post Gallery Zurich, 2021)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 밖에도 필립스는 2023년 런던의 콥 갤러리(Cob Gallery)와 2022년 런던의 오지리 갤러리(Ojiri Gallery), 테이모어 그란 프로젝트(Taymour Grahne Projects), 2021년 런던의 몰 갤러리(Mall Galleries)와 J/M 갤러리(J/M Gallery), 질리언 제이슨 갤러리(Gillian Jason Gallery)등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뵈브클리코(Veuve Clicquot)의 국제 순회 단체전인 ≪Solaire Culture≫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