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nd Your Sweating Palms Yaerim Ryu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케이크를 굽는다는 것, 위험의 찰나에 설탕을 먹는다는 것.”
– 오션 브엉,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페레스프로젝트는 유예림(1994년, 서울)의 갤러리와 함께하는 첫 번째 전시이자 베를린에서의 첫 개인전인 ≪You and your Sweating Palms≫를 소개한다.
유예림이 그린 빗방울은 만져질 듯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가상의 마을 하늘을 물들인 일렁이는 회색빛 가운데, 비에 흠뻑 젖은 육중한 인물이 서 있다. 후드 모자를 쓰면 폭우에도 끄떡없다. 그들에게 익숙한 날씨다.
유예림은 미지의 공동체를 그린다. 작가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는, 작가가 방문해 본 적 없는 동네다. (2023) 속 동네는 안개 낀 북유럽 특유의 날씨로 가득하다. 최근 베를린으로 이사 간 작가의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다. 빨간 교통 신호와 도시의 포장도로에 튄 비둘기 배설물이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광활한 차도와 진입로, 푸른 잔디밭 주변으로 멀찍이 자리 잡은 단독주택들이 미국의 어느 교외 지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You and your Sweating Palms≫는 이처럼 기이한 교외의 장면에 스며드는 안개를 기록한 전시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감각되는, 회화의 대기를 통해 전해지는 장소의 체험을 묘사한다.
새로운 도시의 흐린 거리에서 길을 잃지 않고서는 조깅을 할 수 없었던 작가는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다른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그들 몸에 흐르는 땀을 떠올렸다. 그녀가 그려내는 교외의 모습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건장한, 남성적 외향의 인물들로 가득하다.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거나 상기된 이마에 달라붙어도 이들은 침착하다. 바비큐를 하거나, 조깅하고, 집을 수리하는 이들은 무거운 몸으로 굳건히 땅을 딛고 있다. 어떤 면에서 작품들은 메일 게이즈(Male gaze)를 전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에 반응한다 — 인물의 눈은 결코 관람자를 마주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회화의 여성 누드가 그러했듯 벌거벗은 몸을 관객을 향한 채 고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대신, 이들은 여러 겹의 두꺼운 옷을 입고 차분하고 무관심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반투명한 막 뒤에 거주하는 이들은 관람자의 시선에 영향받지 않고 주체성을 유지한다.
전시작 중 가장 먼저 그려진 그림은 여섯 명의 거대한 사람들이 주택 바깥에서 일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중 두 명은 금이 간 창문을 나르는 중인데, 작가는 깨진 창문과 그것을 투과해 보이는 창문 너머의 풍경을 채도를 낮추어 뿌옇게 처리했고, 이는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특질이 되었다. 유화 물감을 얇게 겹쳐 그린 회화의 차분한 표면은 축축한 회색이 만연한 베를린의 날씨를 시각적으로 반영한다. 동시에 이렇게 구축된 평면성은 마치 유리 뒤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화면을 만들어 내고, 이는 관람자와 그림 속 세계 사이에 흥미로운 거리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나아가 작가는 인물, 주택, 도로를 그리기 위해 구글과 게티의 스톡 이미지를 참조하는데, 이들은 특정한 소수의 키워드를 나타내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확산됨으로써 정상성과 보통의 사람들, 보통의 삶을 대변하게 된다. 이러한 레퍼런스와 작품의 서사를 희석하고 압축하는 기법을 혼용하면서, 작가는 아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공동체에 익숙해져가는 자신의 역설적인 경험을 관람자에게 제시한다.
관람자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집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우리가 보내는 시선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조차 새롭고 낯설게 느끼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대기를 감각하고 이를 그려냄으로써 장소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새로움을 강조하고 대상과 본인 사이에 거리를 둔다. 이 과정에서 화면의 모든 부분이 평등해지고 서사가 납작해진다. 내러티브가 더 이상 중심에 있지 않고 거리감 자체가 전면에 드러난다. 따라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모순을 내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묘사하며, 관람자를 내부 서사로부터 분리시키는 동시에 이런 단절의 사실도 함께 드러낸다. 드러내는 것만큼 숨긴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항상 부재한다. 작가 자신은 관찰당하기를 거부하면서 관람자와 함께 관찰자의 입장을 취한다.
본 전시는 유예림과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 하는 첫 전시이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서울 갤러리기체(2022), 서울 쇼앤텔(2021), 쉬프트 서울(2021)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상하이 펑크갤러리(Func Gallery, 2022), 서울 두산갤러리(2022), 서울 BGA 마루(2021), 슈투트가르트 베르그슈타펠 (Stuttgart, 2017) 등 단체전에 선보였다. 2022년 프리즈와 샤넬 코리아의 <나우 앤 넥스트(Now & Next)>,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 <다시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그녀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