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 Rafa Silvares

Press release

페레스프로젝트는 갤러리와 함께하는 라파 실바레스(1984년 브라질 산토스)의 네 번째 개인전이자 베를린 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인 ≪꽃 Bloom≫을 개최한다.

 

4월 26일 이른 오후, 라파와 나는 구 베를린 동쪽에 있는 라파의 작업실 건물 밖에서 처음 만났다. 날은 밝고 화창했지만 어두운 긴 복도에 들어서자, 조명은 곧바로 어둡고 습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전구 하나가 우리 앞을 안내한다. 라파가 작업실 문을 열자, 이보다 더 대조될 수 없는 크고 넓고 높고 하얀 벽이 형광등 선을 따라 비췄다. 창문은 없고 바깥세상은 오로지 상징으로만 존재한다. 느낌은 건조하고 세심하다. 내 시선은 위아래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내 현재 진행 중인 그의 작품으로 향한다. 미완성이지만 선명하다. 벽과 책상 위에는 영감의 조각, 이미지 형태의 회화 세계, 라벨들, 뒤틀린 반짝이는 금속들, 수도꼭지 설명서와 책이 곳곳에 있다. 그는 나에게 금속 컵에 담긴 탄산수를 건넨다. 내가 마신 탄산수는 물결을 타고 내려와 금속처럼 차갑다.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아키그램(Archigram), 완다 피멘텔(Wanda Pimentel), 타르실라 두 아마랄(Tarsila do Amaral), 미셸 마제루스(Michel Majerus),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데 스틸(De Stijl)과 바우하우스(Bauhaus), 콘라드 클라페크(Konrad Klapheck), 마친스키-데닝호프(Matschinsky-Denninghoff) 등 자유분방하고 시각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문화 발전의 확실히 중요한 자료로, 이들이 없었다면 분명 실바레스의 작품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자크 레이너(Jac Leirner)에 대해 살짝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은 시스템, 치수, 반짝이는 눈금자, 유형학, 회로, 기능, 공간,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이다. 그의 작품 안팎은 흐릿하다.

 

그의 작업실 주변에 놓인 물건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구부러지고 꼬인 보라색 금속관의 용도는 모르겠지만 열쇠고리일 수도 있고, 은색 완장, 뱀처럼 보일 정도의 거대한 또 다른 꼬인 금속관은 작업실 전체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고, 형광 주황색 종이 또는 천 조각과 함께 알루미늄 포장지를 위에 놓은 회전식 건조기와 같이 너무 밝아서 구분하기 어렵지만 내게 뚜렷한 차이를 보이니 상관없다. 매끄러운 표면과 금속의 대비, 그리고 천장에는 커다란 크롬 도금의 환기용 관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벽, 파이프, 컨베이어 벨트 등 모두 기계처럼 반사되고 일상적인 물건에 기대어 있는 실바레스의 대형 작품들이다. 금속 같은 물체가 빛을 왜곡하고 공간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아름답다. 순수한 반사와 확장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 주변 환경을 포착하는 사물, 사방에서 빛을 흡수하는 반사성 금속, 두껍고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돋보이는 도구와 기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같이 물체 더미는 작업실에서 모두 의미 있다. 주변 환경을 의식하게 하고, 그 자체로 2차원과 3차원 모두에 공간적 구성을 형성한다.

 

그의 최근작은 명확하고 선명하며 색채와 일상적인 사물의 제한된 어휘로 특징지어진다. 빨강, 초록, 파랑의 건축물이 실제처럼 보이는 반사된 물체의 이미지와 함께 섞인 과감한 구성은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꽃이나 흐릿한 액체 형태와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부드러운 형상은 물, 공기, 증기, 불, 냄새, 크림으로 등장한다. 반짝이는 부분과 추상적인 형태 사이의 긴장감은 물리적 현상과 감정적 힘 사이의 긴장감을 구현한다. 이는 관람자가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누군가는 실바레스 작품에서 질감을 거의 느끼고,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거품처럼 둥글고, 풍성한, 관능적인 감각의 물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혹은, 튜브 관 모양의 커튼, 부드럽고 벨벳 같은 천의 수직적인 그라데이션 물결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해 그의 작품은 생동감과 따스함을 얻는다. 이 장면들에는 그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존재만이 암시된다.

 

식기세척기, 믹서기, 꽃병, 파이프, 사일로, 컨베이어 벨트는 분명하고 그곳에 있으며 마치 스티커처럼 평평한 배경에 나타난다. 아니면 전경과 배경이 너무 대조적인 것인가? 이 장소들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이 모든 행동은 아무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 모든 기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존재한다. 작동되지 않는 튜브와 파이프, 아무 데도 연결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모든 것들. 생산은 진척이 없다. 그 어떤 중요한 일도 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웃긴 장치들. 말도 안 되는 폭발. 하지만, 그 움직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아이디어뿐인 걸까? 라파 실바레스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항상 존재하고, 그려진 대상은 사적이면서 공적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이분법을 넘어서는 이 이행은 부드러우면서 예리하다.

 

이 모든 것을 누가 작동시킬까?

 

한결같은 혼돈과 절제, 질감과 기법의 층이 조화를 이룬다. 라파는 단어, 단어 목록, 스케치, 사진, 디지털 이미지, 포토몽타주, 콜라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회화처럼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이 언어와 이미지의 복잡한 구성이다. 라파는 이러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노트와 공책을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이미 구체화되어 있고, 때로는 더 발전하기를 기다리는 자유로운 파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경인 컬러 블록 영역은 마치 무한한 디지털 배경처럼 장난스럽고 정밀하게 도형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벽, 문, 넓은 방, 가구 등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이미지의 사용은 매우 자유롭고 막연한 진실성에 대한 필터링이 전혀 없다. 실제처럼 보인다. 라파 실바레스도 동세대의 다른 많은 작가처럼 이 점에 주목하고 있을까? 표현과 조작, 출처와 진위, 셀프 퍼포먼스의 용이성, 결국은 셀프 퍼포먼스 기계가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누가 작동시킬까?

 

작가는 진행 중인 작품 옆 벽에 걸린 철물점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이것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카운터 위에 수도꼭지가 아무렇게나 진열된 주방 공간이 나와 있다.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고 용도에 대한 힌트만 있는 은색 파이프가 카운터 상단에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그저 철물점 이미지일 것이다. 그에게는 앞으로의 작품에 사용할 수 있는 구도에 적합한 소재이다. 수도꼭지들이 꽃밭처럼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의 작품에 나오는 핏빛 양귀비꽃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썩지 않는 색에 수도꼭지와 꽃이 어우러지다. 참 좋은 분위기이다.

 

늦은 오후이다. 내가 그의 작업실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구동독을 지나간다. 그 역사의 흔적은 여전히 외부에 남아, 건축과 도시 계획의 형태로 회복력을 발휘하고 있다. 트램이 플라텐바우텐(Plattenbauten)과 다른 조립식 건물들을 지나고 밖을 내다본다. 하늘과 주변 나무를 반사하는 금속 파사드가 라파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대담하고 평평한 컬러 블록으로 이루어진 많은 파사드가 지나가는 반짝이는 금속 자동차의 배경이 되어 준다. 실제 작품이다. 작은 건물 중 일부는 돌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렸고, 일부는 아름다운 부조를 표현했고, 대부분 노동하는 사람을 묘사했지만, 건초, 포도, 꽃과 같은 자연 요소를 조용히 드러낸 작품도 있다. 트램이 더 넓은 길로 좌회전할 때, 수평선에 있는 높은 굴뚝에서 하얗고 거품이 가득한 커다란 증기구름이 뿜어져 나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라파 실바레스의 작품 중 하나를 연상시킨다. 존재의 암시.

 

–누노 지 브리토 호샤(Nuno de Brito Rocha)

Installation Sho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