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acle of a wreck Pam Evelyn
페레스프로젝트는 팸 에블린(1996년, 영국 길퍼드)이 갤러리와 함께하는 첫 번째 개인전 ≪난파선의 광경(Spectacle of a wreck)≫을 개최한다.
영국의 유명 고고학자 모티머 휠러(Mortimer Wheeler)는 고고학은 다음과 같은 과학이라고 적었다.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고, 인류애가 가미되어야 한다.” 모터머 휠러, 『지구로부터의 고고학(Archaeology from the Earth)』(1954)
팸 에블린은 고고학자가 땅을 파듯 작업하며, 휠러가 과학을 대하는 고고학적 방식과 비슷하게 추상을 다루고 다듬는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관대하면서도 발견의 정신으로 동기 부여된다. 두 사람 모두 사전 계획 없이 자신의 기술을 수행하며, 탐구의 수수께끼와 발견의 계시에 의해 지배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물리적 혹은 지적 체계의 의무나 부담을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
에블린의 회화적 발굴은 형식적 관심보다는 과정의 역학에 따라 움직인다. 그녀는 과거 문명의 유물을 찾기 위해 시간의 안료를 파헤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미적 발견에 도달할 방법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만의 발굴 작업에 힘을 싣는다. 에블린은 과거의 혼돈을 분류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매우 물리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움켜쥔다. 바로 화려함의 발굴에서 오는 극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에블린은 지시적 표현에 자유로웠기에 작품의 질감을 깊이 탐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놀라운 표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화적 삶의 환희가 울려 퍼지는 캔버스는 코브라(CoBrA) 이래 볼 수 없었다. 카렐 아펠(Karel Appel)의 순수함과 경험의 변환을 떠올리게 하는데, 에블린의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 표면은 레온 코소프(Leon Kossoff) 특유의 형태와 빛의 흐릿한 경계 속에 녹아있다. 두 구상화가는 추상의 유혹에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그러면서도 주제나 대상의 추적을 부정하지도 제재하지도 않는다.
에블린의 의도는 물감으로 여정을 시작하고, 우리가 그 여정을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는 목적지보다 실험으로 움직인다. 그녀는 시각적 작업의 구조물이 아닌, 틀에 관심을 둔다. 에블린의 작품에는 수많은 추상의 방언이 어우러져 있지만, 그녀의 회화는 자국, 얼룩, 번짐, 긁힘이 어우러져 있는데, 이는 정신적, 신체적, 인지적 얽힘 속에서 아름답게 혼합되어 그녀만의 회화적 가능성의 언어를 표현하면서 신선하고 풍요롭게 유지된다. 이러한 얽힘은 에블린의 예술에 동력이 되며, 혼돈의 회화적 스펙터클을 펼치는 무대를 제공한다.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이 1999년에 발표한 소설 『인비저블 몬스터(Invisible Monsters)』 에서 썼듯, “우리의 진정한 발견은 혼돈 속에서, 틀리고 어리석고 바보 같아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것에서 온다.” 에블린은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그곳에 가서 회화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제시한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탐색한다. 퍼포먼스 행위인 그녀의 예술은 때로는 즉흥적이고, 때로는 즉각적이며,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신중하다.
전시작들의 제목에서 물감 안팎으로 펼쳐지는 수행적 탐구를 엿볼 수 있다. <아래(Below)>와 <안(Inside)>을 보면, 하나의 단어가 색인적 잠재력의 직물로 즉시 확장된다. 무엇의 아래이며, 어디의 안인가? <벽에 침입(Breach in Wall)>과 <야외 안(In An Outdoor Space)>도 마찬가지이다.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에블린의 추상이 그러하듯 서로 얽히고 넘나들며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색인 문법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작업 방식을 다시 한번 반영한다. 이러한 제목들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석양의 폭풍을 목격하는 순간, 무너진 파사드 사이로 비밀 정원을 엿보는 느낌과 같이, 에블린이 과거에 ‘안개가 피어오른다’라고 표현한 물성 또한 드러낸다. 공간과 형태의 증발과 응결을 통해 유동적인 움직임, 물질, 그리고 의미의 활발한 기억을 시작하고 형성한다. 위, 아래, 안, 밖, 통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이 행위는 예술이기에 작가와 관람객 모두의 만트라(mantra)가 된다. 에블린은 색의 피어남, 깊이의 두께, 선의 매혹적인 선으로 캔버스를 채우며 긴장감과 긴박감을 화면에 암시한다. 그녀의 붓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며, 항상 움직이고 탐구하며 파헤친다. 강렬하면서도 유연한 에블린의 몸짓은 그 자체로 어떤 가장이나 의도를 시도하지 않는다. 여기서 몸짓은 작가 내면의 깊고 어두운 어딘가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모험은 벼랑 끝에 선 사람의 본능처럼 손을 잡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고, 묘사에 대한 욕망이나 구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원하는 것을 정확히 실행한다. 축하, 숭배, 또는 슬픔의 분위기가 넓고 풍성한 얼룩진 색채의 평면 위에 구현되어 어떤 것은 느리고(largo), 어떤 것은 서정적(adagio)이지만, 에블린의 화면 곳곳을 ‘민달팽이가 무지갯빛 흔적을 남기듯’ 항상 기어다니는 힘차고 구불거리는 곡선으로 생동감, 고뇌, 위로를 선사한다.
메리 캐리-윌리엄스
2021년 9월
윌트셔주 샌디 레인
팸 에블린은 런던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UCL 슬레이드 미술학교(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다. 최근 전시로는 로스앤젤레스의 바르트 갤러리(Baert Gallery, 2021), 헬싱키 익스히비션 라바토리(Exhibition Laboratory, 2019), 암스테르담 알트후이스 호플란드 파인 아트(Althuis Hofland Fine Arts, 2019), 런던 더 크립트 갤러리(The Crypt Gallery, 2017), 런던 더 어프로치 갤러리(The Approach Gallery, 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