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ed Ham Rafa Silvares
≪훈제 햄(Smoked Ham)≫은 브라질 화가 라파 실바레스(1984년, 브라질 산토스)의 베를린 페레스프로젝트 데뷔 개인전이다. 극도의 정밀함과 손기술과 함께, 실바레스의 작품은 서사적·주제적 접근을 피하는 대신 회화의 감각적이고 공감각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레스프로젝트에서 선보이는 중대형 신작들은 산업화된 물체, 가정용품, 그리고 기계가 일종의 유기적 부산물을 생성하는 행동을 묘사한, 일관된 회화적 레퍼토리를 보여준다. 비록 이 회화에서 인물은 완전히 부재하지만, 이는 (수화기, 빨대, 또는 테이크아웃용 포장지와 같은) 신체의 연장으로 기능하는 물체와 그것이 전달하는 다양한 감각(청각, 미각, 후각, 촉각, 물론 시각까지도) 모두를 통해 암시된다. 나아가, 실제로 이러한 모든 물체들은 어떤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는 그 자체로 의인화되고 지각이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전시명은 작품에서 신체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회화에서 음성과 시각 언어 사이 다양한 연관성을 탐구하는 실바레스의 관심을 반영하며, 단어와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다른 지시 대상(사물 자체)에 대응되어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기호 게임이다. 이 맥락에서 ‘훈제 햄’은 특정한 유형의 육류를 의미한다. 수틴(Soutine)의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이나 아드리아나 바레장(Adriana Varejão)의 맥동하는 내장이 아니라, 분홍색의 보기 좋은 외관이 거의 인조적으로 보이고, 질감이 부드럽고 밀도가 있으면서도 훈제된 것이다. 즉, 질감은 실바레스가 공들여 그린 회화 표면에 들인 노력을 반영한다. 작가는 사물들이 ‘필터를 통해 보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색상 그라데이션, 진동, 대조가 조화를 이루는 구성이 외형적 우수함을 갖추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상은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보다는 회화의 영역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작업의 구실 또는 출발점으로 사용된다. 이는 작품 속 만들어진 형상들이 불필요하거나 무작위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라파 실바레스의 작업은 미술사, 문학, 디자인, 대중문화 등 무수히 많은 자료에서 영감을 얻으며, 이들은 모두 그의 회화적 어휘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한편, 그의 작업 철학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전 세계적으로 어떤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특정한 상징성 또한 없는 매우 일상적인 사물의 이미지를 포함한다. 이와 함께, 작가는 텍스트, 아이디어, 시각적이고 문화적인 참고 자료 등 영감을 주는 모든 종류의 자료 목록을 수집한다.
이 선택적 투과성의 방법론은 그가 ‘자기력’이라 표현한 힘에 의해 하나로 모인 서로 다른 자료들의 개인적 레퍼토리를 생성한다. 다음 단계는 각 작품의 형상과 배경, 색채 대조, 또는 일반적인 형태(gestalt) 사이 다양한 구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아날로그식 드로잉과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모두 사용한 일련의 색과 구성 연구를 포함한다. 독일계 브라질인 엘레오노르 코흐(Eleonore Koch)와 그녀의 먼 친척인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 같은 예술가처럼, 라파 실바레스는 자신의 회화를 세심하게 계획하는 데 많은 힘을 쏟으며, 작품이 전달할 수 있는 특정 서사적 내용보다 현상학적 측면을 우선시한다. 이는 분명 예술(또는 회화, 이와 관련된 것들)의 자주성에 대한 근대적 믿음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주장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대신, ‘포스트-네오(Post-Neo)’ 작가로서 (신기하학적 개념주의(Neo-Geo),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또는 일반적으로 ‘회화의 죽음’ 이후의 회화와 같은 맥락에서), 실바레스의 작품은 전적으로 일상 요소뿐만 아니라 다수의 예술 양식과 그에 앞선 개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종종 이들을 자신의 작품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혼합한다.
예를 들어, 회화 작품 <햄 퍼레이드(Ham Parade)>(2021)는 피카비아(Picabia)의 <사랑의 퍼레이드(Love Parade)>(1917)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그는 회화적 소재로서 기계에 매료되기 시작했을 때 이 작품을 완성했으며 산업적 물체가 인간의 특성을 부여받는 만유기계론(mechanomorphic) 연작을 창작했다. 실바레스의 회화에서 중심이 되는 형태는 여러 종류의 금속 기계 조각과 기구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기차 형태로, 이는 회화의 평면을 수평으로 분리하기 위해 구성을 가로지른다. 흑백 변화가 대부분인 것과 대조적으로, 작가는 순수한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 색상을 구성의 배경 위쪽에, 활기찬 플루오 옐로우(fluo yellow) 색상을 구성의 하단에 더했다. 이 작품은 캔버스의 오른쪽을 확장하는 기차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인, 광범위하고 감각적이며 매우 부드러운 붉은색과 흰색 변화로 보완된다. 그러나 실바레스의 모순된 풍경에서 연기는 두툼한 (햄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기계의 따뜻하고 매끄러운 외관이 산업 사물의 차가움과 딱딱함과 극적으로 대조됨에 따라 만들어진 이상한 유기적 물질이다. 피카비아의 기계처럼, <햄 퍼레이드> 속 형상은 그것의 수수께끼 같은 자가 기능적 매커니즘 (즉 인간 개입없이 움직이는 것) 뿐 아니라 욕망, 감각, 또는 매혹과 같은 인간의 감정으로 가득한 것을 생성하는 것처럼 표현되기 때문에 인간과 유사한 특질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바레스가 회화적 소재로서 기계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 산업화 발전에 따른 초기 근대 이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기계는 오히려 환경적 대재앙 직전의 과도적 소비지상주의 세계의 징후로서 나타난다.
<부드러운 발화자(Smoothsayer)>(2021)에서, 네 개의 금속 빨대가 배경의 강렬한 붉은색 음영과 대비되는 녹색, 갈색, 회색의 변화가 병치된, 거품이 가득한 평면에서 싹을 틔운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도 실바레스는 역사적 선례에서 구성에 관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작품에서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가 동일한 이미지의 연속적 평면을 만들기 위해 건축적 요소와 극적인 그림자를 사용한 것을 참고했다. 빨대 끝에 맺힌 점성이 있는 물방물은 사물의 기능을 전복시키고자 한다. 이때 빨대는 액체를 마시기 위한 도구가 되는 대신, 회화를 실제로 그 자체로 소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실바레스는 <부드러운 발화자>를 스스로 소모하는 회화이며, 탐나는 상품으로서 동시대 예술의 지위에 관한 생각들을 제안한다고 언급한다. 이때 회화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끝없는 나르시시스트-페티시스트(narcissist-fetishist)의 고리에 갇혀 자신의 맛을 열성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실바레스는 오늘날 예술계의 재정적이거나 투기적 측면을 비판하는 것보다, 예술과 이미지와의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고, 수 세기 동안 예술을 만들고 경험하고자 한 인간 충동의 원인을 탐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벽화 크기의 작품은 세폭화 <늦은 밤의 밀회(Late Night Booty Call)>(2021)이다. 그 구성은 확장된 세 개의 캔버스 전체를 가로지르며, 일반적으로 포장 음식을 싸는 구겨진 포장지 조각처럼 보이는 것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이 우측에서 시작해 좌측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점점 확장된다. 거대한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이어지는 색상 변화는 실바레스 회화의 이질적인 사물이 만들어낸 또다른 유기적 부피와 비슷한 방식으로 부드럽고 감각적이며 무엇보다도 매우 모호하다. 특정 사례로, 색상 변화는 오직 형상에 관련해 불꽃으로만 읽어낼 수 있으며, 이는 관람객들이 그와 같이 식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맥락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불꽃을 구성하는 부피에는 매우 쾌락적인 요소가 있다. 이미지는 감각에 열중한 채로 서로 얽힌 한 무더기의 매력적인 인체(몸, 엉덩이, 다리)를 연상시키며, 제목에 의해 더욱 강화된 또 다른 의미의 층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늦은 밤의 밀회>는 아마도 술에 취한 후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팔라펠로 배고픔을 달랜다거나, 한밤중 갑작스런 성욕에 시달리는 등의 모든 욕망의 원천이 측은할 정도로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전시작에서 반복되는 색상 변화 덩어리들은 무엇이고, 구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작품들은 꼼꼼히 채색되었으며 매끈한 표면은 작가의 주관성을 드러낼 어떤 흔적도 보여주지 않는다. 미술사적 관점에서 더욱 분명한 관련성은 브라질 화가인 타르실라 두 아마랄(Tarsila do Amaral)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로부터 영향 받은 곡선적인 형상을 인위적이고 조각적인 양감으로로 표현한 그녀의 작품은 얼핏 실바레스의 형태를 상기시킨다. 이 이미지들 속 차갑고 정확한 산업물과는 대조적으로, 색상 변화 덩어리들은 서로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무정형의 통제되지 않는 물질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수태고지(Annunciation)>(2021)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황금빛 자수로 장식된 연분홍색 로브 차림으로 묘사된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유명한 초기 르네상스 제단화에서 출발했다. 실바레스의 <수태고지> 작품 중앙은 고기 분쇄기에서 쏟아져 흘러나오는 듯한 옅은 분홍색이 주를 이룬다. 이 작품들의 소재는 다르지만, 전통적인 종교적 레퍼런스를 이용하는 실바레스의 선택은 자신의 회화에 두껍고 부드럽게 방출되는 것을 초월적 특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감각에 깊은 영향을 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를 생성하는 회화의 능력에 관한 라파 실베레스의 포기할 줄 모르는 신념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회화는 그 자체로, 이전의 것을 능가하거나 파괴하는 것 또는 현대의 문화적 논쟁을 보여주거나 무언가를 대표할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글: 키키 마추켈리(Kiki Mazzucchelli)
라파 실바레스는 상파울루 아르만도 알바레스 펜치아두 대학(Fundação Armando Alvares Penteado)에서 순수미술, 그리고 상파울루대학교(FFLCH University)에서 언어·문학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베를린 페레스프로젝트에서 그의 첫 개인전 ≪훈제 햄≫이 진행 중이다. 그는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작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