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lch Rebecca Ackroyd
페레스프로젝트는 레베카 애크로이드(1987년, 영국 첼튼엄)와 함께하는 첫 개인전 ≪뿌리 덮개(The Mulch)≫를 개최한다.
한 친구가 미술대학에서 저명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무제 영화 장면(Untitled Movie Stills)> 연작 중 한 작품을 보고 있었다. 피사체는 카메라를 등진 채 작은 여행용 가방을 들고 텅 빈 길가에 서 있는 여자였다. 그때 교수님이 가방이 따뜻해 보이는지 물었다. 친구는 의아했지만, 가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아마도 따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상자를 열 때 나오는 빛을 떠올리면, 그 안에 따뜻한 무언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이 누와르적이며 냉전 시대 분위기를 풍기는 이미지를 고려할 때 (카메라를 등지고 서 있는 이 인물이 스파이처럼 쉽게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그 안에는 방사성 물질 같은 무언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뜨거운 것을 전달하려는 걸지도 모르고, 그래서 지금 도망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교수는 잠시 멈추더니, 분명하게 말했다. ‘따뜻해(warm) 보이는지’가 아니라, ‘낡아(worn) 보이는지’를 물었다고. 그리고 수업은 다시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내 친구의 추측이 더 마음에 든다. 때로는 우리가 무언가를 얻지 못했을 때, 모든 암호와 열쇠가 사라지고, 어떤 것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잠겨 있고 숨겨져 있을 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와 제시하는 해석이 가장 좋다. 그것은 가장 풍부하고,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한다.
레베카 애크로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작업실에 갔을 때, 그녀는 내가 자기 생각을 설명하거나, 올해 작업 중인 작품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렉시트의 전망과 그에 따른 반동적 태세와 폭력, 영국과 독일에서 우파 정치의 부상 등 최근의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고, 예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고 한다.
내 친구의 의미 있는 실수처럼, 애크로이드의 마음도 따뜻함으로 향한다. 그녀는 베를린 전시에서 기대어 있는 인물 조각이 햇볕을 쬐는 도마뱀처럼 ‘일광욕’을 할 것이라고 묘사한다. 예전에 그녀는 반은 사람, 반은 난로의 연통, 복부가 위치해야 할 자리에 깊게 그을린 난로를 조각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러한 작품이 집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했던 노래인 ‘불을 지펴 두세(Keep the Home Fires Burning)’에 따르면, 난로는 오랫동안 주거의 상징이자 국가의 정치적 수사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2018년, 나는 그녀의 작품이 거리에서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녀는 이제 셔터 문을 주조한다. (그녀는 이 시리즈를 <캐리어(Carriers)>라고 부른다) 배타적이고 안전하며 특유의 리듬을 가진 구조물은 그녀가 일하고, 내가 사는 런던 지역에서의 모든 발걸음을 강조한다. 페레스프로젝트에서 애크로이드는 천장까지 긴 벽을 세워 공간을 런웨이나 길로 만들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집안에 불은 타오르고 있지만(애크로이드가 퇴마 의식처럼 묘사한, 2017년 전시 제목은 ≪집의 불(House Fire)≫이었다), 거리의 열린 땅에서도 새로운 불이 타오르고 있다. 작업실에서 애크로이드는 조개껍질처럼 생긴 낮은 타원형의 철망 조형물을 인터넷에서 가져온 불길 이미지로 덮어씌운 모습을 보여줬다. 불을 그려보거나 불을 칠해본 적이 있나요? 인쇄해서 붙일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애크로이드는 이런 도전에는 관심이 없다. 다음 질문입니다. 하나 골라보세요. 넘어갑시다.
오늘날 대중 담론은 무역로와 국경, 벽과 교차로, 도시를 오가는 기관, 침몰하는 배 등 (비)이동성 이미지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보는 불은 마치 대형 수하물처럼 이동성이 있다. 조개처럼 생긴 것도 이러한 이동성의 일부이다.
소라게는 조개를 훔쳐 다른 조개를 찾을 때까지 그 안에서 살아간다. 마치 조약돌처럼 당신은 조개를 주워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서 조개를 발견하고, 어디에 두어야 할지, 그들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애크로이드가 만드는 풍경은 무엇이 어디에 속하는지, 어떤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거주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맞서는 이러한 종류의 변위로 가득하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또 다른 조각은 종말론적 서부극 세트장에 나오는 듯한, 깨끗하게 표백된 갈비뼈 시체였다. 구조로서의 신체, 신체로서의 건축은 작가가 반복적으로 다루어온 주제다(2016년 런던에서 여러 차례 선보인 <대단한 여인상 기둥(the Caryatids on steroids)>을 참조하라).
이 상자는 어떤 짐승이나 신체의 일부였든, 침낭처럼 몸을 넣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열악한 집이지만, 그래도 절망적인 상황 속 일종의 피난처가 된다.
대중 심리학 언어에서 흔히 '짐(baggage)'을 부정적인 것으로, 암묵적으로 떨쳐버리고 싶은 무엇으로 여긴다. 하지만 애크로이드에게 있어 짐과의 관계는 다소 양가적이다. 그녀의 작품 <캐리어(the Carriers)>의 상단 패널에는 제작 연도와 함께 뉴스 스크랩, 드로잉, 미완성 아이디어, 버려진 설계도 등 아카이브 자료로 가득하다. 애크로이드는 이를 '과도기적 오브제(transitional objects)'라 부르며, 애착과 트라우마적 분리에 대한 정신분석적 기록을 은근히 상기시킨다. “각 이미지에 특별한 ‘암호화된’ 의미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애크로이드는 함구한다. 그 어떤 것도 불필요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어떻게든 남아 있다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다만 그 형태는 짐작할 수 없고, 언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다.)
무엇이 배제되고 무엇이 포함되는가, 무엇이 간직되고 무엇이 버려지는가, 무엇이 들어오고 무엇이 나가는가와 같이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들인 듯하다. 그리고 이는 모두 소속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매끈한 우주비행사 헬멧을 쓴 애크로이드의 조형물은 마치 '햇볕을 쬐는' 듯한 편안한 모습으로, 마치 집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집 안에 있을까, 아니면 집 밖에 있을까? 다리에 창문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붉은 내부가 바깥으로 드러나 '속'이 밖에 있는 셈이다. 이상하고 서로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기묘한 풍경의 일부다. 나무는 충분히 오래 두면 금속 난간을 감싸며 자라난다. 이런 나무 난간을 뭐라 부를까? 잡종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어디에나 속하면서도,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누워 있는 인물들이 헬멧 위로 쓰고 있는 안경은 마치 이자 겐츠켄(Isa Genzken)의 외계적인 할리퀸 마네킹에서 낚아채온 것처럼 보이고, 그 안경들은 섬뜩한 붉은 빛과 그것이 의미하는 환경에 맞춰진 듯하다. 사실 이 안경은 1976년 『아트포럼(Artforum)』의 상징적인 광고에서 딜도를 들고 포즈를 취한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가 착용한 선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애크로이드는 말했다. 형태에 내재한 이분법(딱딱함/부드러움, 남성적/여성적, 서사적/일상적)을 탐구하는 데 몰두해 온 벵글리스가 애크로이드의 '장소-만들기(place-making)'에 일종의 신화적 공간을 제공한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광고 속에서 소품처럼 손에 쥔 이탈한 남근 모형이 떠오른다. 또 다른 탈구, 사물도 신체의 일부도 아닌 그 무언가. 그리고 작가의 자기 입장이 완전히 과시되면서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선글라스까지.
칠흑 같은 검정 색조, 내려진 셔터, 폐쇄된 길가의 상자, 그 안에 갇힌 미스터리, 이 모든 것이 이 전시에 이름을 붙인 '뿌리 덮개(Mulch)'의 형태라고 애크로이드는 말한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둡지만,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길가의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어딘가로 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글: 매튜 맥린(Matthew McLean)
-
Unknown Landscapes with Rebecca Ackroyd
Penny Rafferty, Elephant Magazine, May 21, 2018 -
Berlin’s Gallery Weekend: Body Conscious
Mitch Speed , Ocula Magazine, May 4, 2018 -
Here’s What Went Down at Berlin Gallery Weekend 2018
Candice Nembhard , Highsnobiety, May 3, 2018 -
Sorge um Standort: Gallery Weekend in Berlin
Monopol Magazin, April 26, 2018
-
8 Shows You Need to Catch at Berlin Gallery Weekend
Sleek Magazine, April 25, 2018 -
Ahead of Berlin Gallery Weekend, the Pick of the Shows to See
Hili Perlson, Frieze, April 24, 2018 -
10 Highlights: Gallery Weekend
Berlin Weltkunst, April 1, 2018 -
Rebecca Ackroyd: Human Debris
Federico Sargentone, Kaleidoscope, March 1,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