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rning Opulence Jeremy
페레스프로젝트는 제레미(Jeremy, 1996년생 스위스 제네바)가 갤러리와 함께하는 첫 번째 개인전 ≪Mourning Opulence≫를 베를린 공간에서 개최한다.
사치와 환상, 욕망, 감수성은 제레미의 작업의 핵심이다. 분홍색으로 흠뻑 적셔지고,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꽃병들로 강력해진 이 전시는 우리를 이성애 규범주의라는 틀에 박힌 길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든다. 보이지 않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는 이성애 중심주의의 베일이 퀴어의 광택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 신화와 비디오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제레미는 자신의 작업을 어떤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의 작품들은 각각의 주인공, 모험, 규칙, 언어를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힌다. 커다란 크기의 작품들은 작은 작품들과 번갈아 배치되어, 마치 문장 속 쉼표처럼 전시를 보는 관객들에게 잠시 동안의 휴식을 선사한다. 작품들은 함께 조각난 서사들을 형성하는 동시에, 캠프(평범한 것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태도. 수전 손택이 정립한 개념)의 아우라로 다양한 소재와 모티프, 색채가 이룬 풍부한 우주를 둘러싸며 하나의 지도를 완성한다.
성적 정체성은 남성적인 신체와 그 표현 방식을 철저히 연구하는 제레미의 작업의 중심이다. 신화 속의 혼종 괴물인 키메라에 영감을 얻은 제레미는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때때로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셰이프 시프터(변신할 수 있는 존재)들을 한 데 모아 해부학의 한계를 탐구한다. 그는 유동성에 형태를 부여하면서 범주화에 저항하는데, 그가 만들어낸 부풀어 오른 무정형의 변형된 형상은 사회적 기대를 저버리고 미술사의 규범을 왜곡하는 역할을 한다.
자유롭고 도발적인 제레미의 작품은 욕망과 환상을 드러낸다. 남녀의 구분이 없으나 성별과 관련된, 그가 만들어낸 중성적인 돌연변이들은 갤러리의 벽에 걸린 채 근육질의 신체와 관능적인 곡선을 전시한다. 전시 전체에 스며든 에로티시즘은 결코 대놓고 드러나지 않으며, 팽창된 혈관 또는 관능적으로 구불거리는 곱슬머리와 같은 모티프들로부터 넌지시 암시된다. 제레미의 작업에서는 타락한 순수함이 만연한데, 캔버스를 가로질러 펼쳐진 머리카락의 소용돌이가 그 절정을 이룬다. 머리카락은 1980년대의 만화 및 회화와 조각들에 담겨진 의류의 역사를 끌어오며, 그것을 숨기는 척하면서 오히려 주의를 끌어 대상을 암시하는 탁월한 모티프가 된다.
제레미는 누구든지 관심을 보일,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에로틱하고 부드럽게 그려진 곡선을 펼쳐내 보인다. 각각의 작품들은 예상치 못한 길을 따라가며 작가의 끊이지 않는 호기심과 실험에 대한 갈증을 표현한다. 제레미는 오비디우스, 조르주 바타유, 이탈리아 바로크, 캡틴 하록,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를 포함한 이질적인 선례들의 레퍼토리로부터 영감을 끌어와, 마찰과 충돌 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병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미학을 구축한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제레미의 작업 중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던 글인 『Notes on Camp; 캠프에 관한 단상』(1964)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캠프 취향은 일반적인 미학적 판단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축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 그것이 하는 일은 예술, 그리고 삶에 추가적으로 또 다른 표준 집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제레미의 작업은 진정성과 너그러움을 끌어내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솟구치게 하며, 관객들은 감상에 까다로움을 느낄 수 있으나, 그만한 보람을 얻게 된다. 죽음을 암시하는 모티프들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무섭고 소름이 끼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제레미의 작품은 주로 자신이 존재할 권리, 그리고 공간을 차지할 권리에 대한 확고하고도 필수적인 요구를 열렬하고 당당하게 전달하는 ‘메멘토 비비’(memento vivi)가 된다.
이 전시는 제레미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첫 번째 개인전이다. 제레미는 2021년 스위스 제네바의 제네바 예술대학(Haute École d’Arts et de Design; HEAD)을 졸업했으며, 그 해 스위스 프리부르의 월스트리트에서 ≪Art is Lifer≫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제레미는 니콜라스 브루하트(Ncolas Brulhart)와 샤샤 라포(Sacha Rappo)가 기획한 프리아트 프리부르 미술관(Kunsthalle Friart Fribourg)에서의 ≪La main-pleur≫와 모하메드 알무시블리(Mohamed Almusibli)가 기획한 페레스프로젝트 밀라노 공간에서의 ≪September Issues≫, 제네바 체리쉬(Cherish)에서의 ≪CHEMICAL X≫, 스위스 바젤의 볼라그 아틀리에(Bollag Atelier)에서의 ≪A moment of being≫, 스위스 제네바의 제네바 현대미술관(Centre d’Art Contemporain Genève)에서의 ≪LEMANIANA – Reflections on other scenes≫ 등 다양한 그룹전에 참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