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roine And Her Mate Dorothy Iannone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방법
내 과거의 직업이 끝나고, 미래의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며,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긴 공백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모든 것이 내게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여러 방향을 동시에 개척하며 새로운 길을 치열하게 모색했다. 그리고 창의력이 내 삶의 여러 영역에서 꽃피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삶을 잃음으로써 삶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계속 성장하기 위해 여러 번 길을 새로 개척해야 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한 가지 시각의 죽음과 새로운 시각의 탄생을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경험하고 나 자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시 이안노네(Dorothy Iannone)의 「자서전의 노트의 파트 7(Notes for an Autobiography (Part VII))」에서 발췌. 1989년 4월 베를린의 페테르센 갤러리(Petersen Galerie)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를 기념하여 출판된 『도로시 이안노네: 출처 1961-1966(Dorothy Iannone: Werke Von 1961–1966)』 중.
페레스프로젝트는 1989년 서베를린에서 열린 전시 이후 처음으로 도로시 이안노네(1933년, 미국 보스턴)의 초기 추상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이안노네는 1960년대 초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한 초기 회화를 통해 선명한 색채 구조와 친밀한 시각적 서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추상 표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녀만의 초기 구상화 양식에서 에로티시즘, 신비주의, 해방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주제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주제들은 이후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기가 이안노네의 시각 언어에 내재된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기 실험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때 그녀는 궁극적으로 ‘황홀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 아마 나의 후기 작품에서 즉흥적 붓질은 이후 작품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즉흥적으로 부른 노래, 즉흥적으로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인 강연으로 승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삶 전반에 창의성이 스며들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쨌든, 처음부터 즉흥성 자체가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